나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책 '모세의 코드'를 통해 기독교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내가 가진 기독교에 대한 의문점들을 적어보려 한다. 교인이 아니기에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부분을 참고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글을 쓰기에 앞서
우선 글을 쓰기 이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이글에 있는 내용은 각자가 스스로 사고를 통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이니까 무조건 옳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그건 신실한 신자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이 맞고 넌 틀렸으니까 너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면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하나님이 신이라면 모든 이야기에 원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할 필요도 없고 무조건 맞으니까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지금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해 보겠다.
기독교의 문제점 의문점
1. 전도(왜 지옥을 이용한 마케팅을 하는가)
첫 번째로 드는 의문은 지옥을 이용한 마케팅이었다. 내가 알던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걸 이용해 전도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많은 교회에서는 지옥을 이용하고 있는데 '지옥 가기 싫으면 하나님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도는 다르다. 나는 전도에 대해서 책 '모세의 코드'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작가는 차를 끌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산골마을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개척교회를 발견하고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목사님이 작가와 아내를 친절하게 맞이해 줬다.
책에서는 특별한 묘사 없이 맞이해 주셨다고 적혀있지만 나는 여기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아마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기에 내용에 빠져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느낀 건 개척교회 목사님이 매우 반가워하면서 반겨주셨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아이고 잘 오셨습니다.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고 해보자. 이런 대접을 받고 마음이 따뜻해진 적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 부분에서 이게 전도구나 하고 느꼈다.
유명한 이야기 해와 구름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 것이다. 기억이 안나는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다. 해와 바람이 지나가는 사람의 외투를 누가 빨리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한다. 구름은 강하게 바람을 불어 보지만 외투를 벗길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사람은 더 강하게 옷을 부여잡는다. 하지만 해는 햇볕을 내리쬐어 더워지게 만들어 사람이 스스로 외투를 벗게 만든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를 바란다면 지옥을 이용해 공포마케팅을 할게 아니라 생각한다. 상대방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스스로 오고 싶도록 만들어야 된다. 이건 전도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장사를 보면 명품가방은 비싸지만 사람들이 서로 사려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강의도 실력이 있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서로 들으려고 하는 법이다.
기독교의 이야기를 세상의 일들과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강제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사람을 본 주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이 교회를 가기 시작하더니 베풀기 시작하고 항상 행복해 보이는 게 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교회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변했을까?"
이런 일은 사실 하나님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어려운 게 아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많은 분들이 동감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나의 생각이 옳고 다른 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 사람들은 각자 이유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전도 이외에도 각자가 생각하는 뜻이 있어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저 나는 왜 그런지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요약하면 왜 전도를 할 때 지옥이란 수단을 사용해서 강제로 교회를 오도록 만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하나님은 그런 방식을 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2. 제사(왜 도와주지 않는가)
교회가 한국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는 제사문제로 갈등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이 본인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상을 신처럼 모시는 제사는 교인이라면 하면 안 된다.
나는 제사를 지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게 어떤 말인지 알기 위해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제사를 지내면 안 되게 되었는데 가족들은 한국 대부분의 집안이 그렇듯이 조상 대대로 제사를 지내왔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어라. 둘 이상의 신을 섬기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 사람은 가족들에게 사정설명을 했다.
제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대신 제가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돕겠습니다.
다른 분들 편하시게 많은 일을 맡아서 하고 뒷정리도 도맡아 하겠습니다.
제가 제사를 지내는 게 귀찮아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사이가 틀어지고 싶지도 않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내용은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금방 떠올린 생각이다.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고 나보다 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가족들을 더 잘 설득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어라는 말을 실천하면서 둘 이상의 신을 섬기지 않는 방법이면 모두 가능하다.
정말 고집이 강한 부모님이 아니라면 부모님은 노력하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많은 교인들은 고집스럽게도 '절대' 제사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이 제사를 지내는 게 나의 믿음생활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경에는 남의 제사에 가까이도 가지 말라는 내용은 없다. 그리고 남들이 제사준비에 바쁘게 일해도 돕지 말라는 말도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저 성경에서 정하지 않은 공백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걸로 보일수도이다. 이건 법을 해석하는 것과 비슷한데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대부분 법이 그렇듯이 모든 상황을 가정해서 정할 순 없다. 항상 법에서 정하지 않은 공백이 생기는데 이때 판사들은 법이 만들어진 취지대로 법에서 정하지 않은 공백 부분을 채워 넣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다시 성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스스로 판사가 되어 성격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부류의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원래 제사를 지내기 싫었는데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원래 제사를 지내기 싫었는데 잘됐다. 이걸 핑계로 안 한다고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경우 말이다. 만일 자신이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결백하다면 가족들에게 잘 설명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남이 마음대로 지적하고 고치려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제사를 거부하는 건 대를 타고 오랜 시간 해오던 관습을 깨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걸 떠나 가족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사과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데에는 주변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라는 의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변사람들과 같이 화목하게 지내는 건 하나님을 뜻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집스럽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으니 무조건 제사 근처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옳다고 볼 수 있을까?
3. 회개(왜 하나님이 죄를 사해주는가)
이 부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앞서 말한 것들보다 쉽게 반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개에 대한 이야기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시는 것을 말한다.
영화 '밀양'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인 신애(전도연)의 아들이 어떤 사람의 손에 의해 죽었는데 그 사람은 결국 감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신애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은 신애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을 통해 지난 죄들을 용서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이젠 행복합니다" 영화를 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때 신애는 분노한다. 아마 신애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이다. 자기 자식을 죽여놓고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 자신과 죽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 그리고 자기 허락도 없이 하나님이 이미 용서를 했다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폭풍우처럼 뒤섞였을 것이다. (자식이 있는 부모가 이런 상황에 평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과거의 잘못이 너무 오래 지난 나머지 이젠 용서받지 못하는 상황이면 회개를 통해서라도 행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은 첫째로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맞을까? 둘째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잘못한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맞다면 굳이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신도가 하나님에게 잘못한 경우는 예외로 하겠다. 잘못한 상대방이 하나님이 될 테니까)
앞서 말했듯이 이 부분은 쉽게 반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은 된다. 나의 의문은 회개라는 이 방식(또는 시스템)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것이다.
4. 기독교를 믿는 마음태도
람이 마음이 약해지면 종교를 찾는다고 한다. 종교를 통해서 마음이 편해지기 위함인데 실제로 어떤 종교인자와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애초에 마음이 약해져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광적으로 믿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정상적인 종교를 믿게 되면 상관없는데 그게 사이비종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기 자식을 교주에게 바치는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종종 볼 수 있고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는 실화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이비는 나쁜 것이고 기독교는 옳은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될까?
질문을 바꿔보겠다. 광적으로 믿는 마음이 잘못일까? 아니면 광적으로 믿는 건 정상적인데 종교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게 잘못일까? 내 말의 의도는 어렵지 않기에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광적으로 믿는 그 약한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다니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정도로 마음이 약하지도 않고 크게 잘못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범죄율도 일반인보다 낮다.(하지만 비율이 조금 낮은 정도이지 없는 건 아니다)
보통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이다. 나약한 마음으로 기댈 곳을 찾는 게 아니라 좋은 말씀을 배우고 베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교회를 방문한다. 어떤 일을 하든 똑같지만 같은 집단에 있고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같은 수준의 사람은 아니다.
상황을 하나 가정해 보겠다. 교회를 다니는 어떤 사람은 나약한 마음 때문에 의지할 곳을 찾아다니다 이곳에 안착했다. 그리고 광적으로 믿게 되면서 하나님 외에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배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한심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가게 된다. (실제로 목사와 스님이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각자 종교를 따르더라도 상대방을 배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건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신다. 그중에 대표적인 말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건 단순한 말이 아니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을 배우기 위해 교회를 가는 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죽고 난 뒤 천국에 가기 이전에 살아있는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기독교를 믿는 마음태도는' 의문이라기 보단 이런 태도는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생각을 적어봤다.
그럼에도 기독교에 있는 장점
나는 앞서 책 '모세의 코드'를 통해 기독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나에게 도움을 많이 주고 있는 책이다.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생각을 적은 것이니 나의 시점에서 내가 알게 된 기독교의 장점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1. 하나님의 이름의 힘
나는 하나님의 이름의 힘을 경험했다. 여기서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건 인간의 방식대로 익숙한 모습을 떠올린 것뿐이다. 만일 정말 세상을 만들어낸 신이라면 인간의 모습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자연법칙 또는 세상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힘이 있는데 책 '모세의 코드'에서는 이걸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은 나사렛의 예수라고 한다. 이건 특정 사람에게만 주어진 힘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어떤 힘인지에 대해 설명하긴 어렵지만 가볍게 느껴볼 수 있는 예를 들어보겠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각자 진심으로 원하는 다른 걸 생각해도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내가 부자가 되는 걸 허락하셨다'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비판적은 태도로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길 바란다.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때때로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이건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고 제압하기 위한 심리작용이지 솔직한 자신의 마음이 아니다)
이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친구, 친척 등)이 허락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사람들이 허락했다고 해서 내 마음에 안도감이 생길까? 이때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경우는 제외해야 한다.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그 사람의 이름에 힘이 있어 내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안도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걸 통해 하나님의 이름에 힘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부분은 공감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딱히 맞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힘을 느꼈고 지금도 도움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을 뿐이다.
이건 하나님의 이름의 힘을 일부분만 말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교인이 아니기에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말할 마음이 없다. 그저 기독교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건 '모세의 코드'를 보고 직접 읽어보고 실천해 보길 바란다. (나는 책을 홍보할 마음이 없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성경을 통해 전하는 말씀
만일 편견을 가지고 보거나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하지 않고 그냥 성격을 본다면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성경을 따지고 들면 틀린 부분이 많다. 하지만 종교는 과학적으로 따지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성경의 의도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함에 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는데 그중 두 가지만 알아보겠다.
첫째로 기독교의 대표적인 정신중 하나인 '아가페'에 대해 알아보겠다. 뜻은 절대적인 사랑이다. 이건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보인다. 왜냐면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더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건 행복한 일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건 동시에 본인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는 기쁨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주는 건 일면으로 보면 기쁜 일이 아니다. 왜냐면 내 것을 내어주면 나는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의 것을 나눠주는 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상위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건 짧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고 나는 교인도 아니니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이런 말씀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인생을 개척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인생에 지쳐 정답을 가르쳐줄 멘토를 찾아다닐 수도 있다. 이때 성경에 있는 말씀들은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도 있다.
요약하면 논리적으로 맞는지 아닌지 따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 우리들은 로봇이나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고 그건 논리적으로 가려지는 게 아니다. 또한 실제 현실은 수많은 변수에 둘러싸여 이론과 논리가 힘을 잃는 경우도 많다. (이걸 잘 표현하는 유명한 말 중 '인생은 실전이야 **아'가 있다) 그러니 성경을 보다 보면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만 이걸 실제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